초등학교 교사로서 나의 나름의 모토는
아이들이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생각과 질문들을 최대한 기록할 수 있게 하자이다.
아이들의 생각들이 어눌하고 엉뚱하더라고 해도 커서 보면 그 기록들이 얼마나 소중할까?
요즘 우리 이학년 학생들은 레시피나 실험 과정 등 절차문 쓰기 (procedural writing)을 배우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샌드위치 만들기, 잠자기 전에 하는 일들 같은 절차를 그림과 함께 쓰다가
과학 실험을 한 다음에 실험 제목, 가정, 준비물, 과정, 그리고 결과를 기록하는 글쓰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료 한 명이 상상력을 더 한 절차문 쓰기 활동을 공유했다.
바로 "선생님을 바꿀 수 있다면 뭐로 바꿀래? (How to turn your teacher into a _______?)
와우! 너무 재밌을 거 같아서 학생들이랑 당장 했다!
글쓰기 활동 전 브레인스톰 토론으로 물어봤다.
"너네 만약 선생님 중이 아무나 골라서 무언가로 바꿀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르고, 무엇으로 바꾸고 싶어?"
아이들은 처음에 에..?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보다가 점점 장난기가 띄는 얼굴을 보였다.
그러고 내가 예를 들어 "내가 A반 선생님을 바꿀 수 있다면... 음.. 그 선생님은 미술을 좋아하니까 미술붓으로 바꿀 거야."
내 예시 후에 완전히 깨달았는지 아무거나 바꿔도 되냐고들 묻더니 점점 발표하겠다는 손들이 올라갔다.
내가 그들의 담임인지라 나를 바꾸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들의 상상력을 듣자니...
내가 참 순진했거나 아님 이럴 수가.... 우리 아이들 생각보다 진짜 웃긴다!!

나를 공주로 바꿀 줄 알았는데 아이들 왈....
1. 내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 바꿀래요. 왜냐면 벽에 붙여 놓고 매일 볼 수 있으니까...(?) 이 아이는 심지어 자기 머리카락
하나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동료한테 이 아이 글 보여주면서 is he being too cute or creepy? 이유와 발상이 너무 귀여운 건지 좀 끔찍한 건지...라고 물었다... 하하)
준비물 : 내 머리카락, 욕조, 나머지는 지금 사진으로 보니 뭐라고 썼는지 잘 모르겠다... 무튼
방법 : 선생님을 욕조로 데리고 가서 자른 내 머리카락로 무언가를 해서... 선생님은 내 머리카락 한 올이 된다!
2. 선생님 딸기로 바꿔서 굴리고 싶어요!
준비물 : 밀가루, 잼, 소금, 우유
방법 : 먼저 모든 준비물을 섞어서 공을 만든다. 공을 선생님한테 준 다음에 선생님 몸에 바른다.
그러면 선생님은 딸기가 된다!
3. 선생님 미트볼로 만들고 싶어요~ 왜냐면 내가 굴릴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으니까...!
준비물 : 고기, 우유, 물
방법 : 먼저 미트볼을 만들어서 물, 우유와 섞는다. 미트볼을 선생님한테 뿌리면 선생님도 미트볼이 된다.
4. 선생님 축구공으로 바꾸면 내가 공 찰 수 있어요.
준비물 : 선생님, 양말, 흰색과 검은색 종이, 사과 주스
방법 : 선생님과 싸워야 하는지 (FIGHT) 찾아야 한다는 건지 (FIND)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준비물을 섞어서
아브라카다브라를 말하고 나면 공이 생긴다!
5. 선생님 닌자로 바꿔서 같이 몰래 장난치고 싶어요~
준비물 : 밀가루, 반짝이, 슬라임, 설탕
방법 : 그릇에 준비물을 넣은 다음에 작은 공들을 만든다. 공들을 선생님한테 던지고 코코 코코! 외친다.
6. 선생님 폰으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한테 전화하고 싶어요.
준비물 : 물, 나무, 초콜릿, 베이킹 소다
방법 : 준비물들을 병 안에 놓고 섞는다. 초콜릿을 넣으면서 ABC!라고 말한다.
7. 선생님 노래하고 춤추는 선인장으로 만들래요. 꼭 노래하고 춤춰야 돼요.
준비물 : 밀가루, 후추, 물, 기름 몇 방울...
방법 : 준비물을 그릇 안에 물과 함께 넣고 매직 주문 랄라라~ 하면 짜잔!
8. 선생님 롤리팝 막대사탕으로 만들어서 배고플 때 먹고 싶어요!
준비물 : 롤리팝 마술지팡이, 설탕, 베이킹용 무지개 믹스
방법 : 선생님을 교실로 데리고 가서 롤리팝 시리얼을 준다. 바부시카 바부시카를 외치면 짜잔!
9. 선생님을 스파게티 한가닥으로 만들어서 더 마르게 하고 싶어요!!
(이 얘기 듣고 나 정상체중인데 괜히 살쪘나 고민하게 잠시 고민했다..)
준비물 : 밀가루, 기름, 풀, 우유
방법 : 모든 패키지를 선생님한테 부은 다음에 풀, 우유, 오일도 섞고 다시 선생님한테 붓고 선생님한테 샤워하라고 한다.
"말(horse) 말 123!)을 외치면 선생님은 짜잔!
17명의 아이들 중 몇 명은 아파서 결석하고 세 명은 체육 선생님 변신을 주제로 글을 썼다.
(담임은 매일 봐서 당연하지만 역시 체육 선생님들은 인기가 많다).
와~ 학생들이 나를 공으로 만들어서 차거나 먹고 싶다니! 이래도 되는 거야??
싶으면서도 귀여워서 죽겠다. :)
내가 어렸을 때 같은 주제로 글을 썼다면 선생님을 무엇으로 바꾼다고 했을까?
지금 생각하기로는 분명 선생님을 무언가 좋은 것으로 바꿔드리고 칭찬받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도 아주 깜찍하고 장난스러웠을 수도 있고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나 또 한국에서의 교실 문화도 잘 모르니까
어떨까 궁금하다.
처음 스웨덴에서 근무 시작 한 후 학생들이 내 이름을 아무 타이틀 없이 불러서 살짝 충격 먹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데 선생님한테 존중이 없는 거 아냐?? 걱정했었다.
심지어 교장 선생님한테도 이름 부른다.
한 오 년쯤 지나니까 특히 아시아권에서 전학 온 학생과 학부모들이 Ms. 나 Ma'am이라고 부르면 너무 이상하고
Teacher이라고 부르면 내 이름은 teacher이 아니라 누구누구라고 한다 (다른 동료들도 그런다).
올해 스웨덴, 그리스, 미국, 체코, 인도, 폴란드, 세르비아, 시리아에서 국적의 학생들과 장난치고 웃을 때는 웃고
말 좀 잘 들으라고 잔소리할 때도 있고...
생각해 보니 존중에 대한 걱정을 한 적 없고 재밌게 잘 지내는 거 같다.
어렸을 때 나는 좋아하는 선생님들한테도 항상 예의 바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잘 보이려고 눈치 보는 아이들보다 감히 선생님을 놀리는 듯한 깜찍 끔찍한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같이 낄낄 거릴 수 있는 지금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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