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듯 확실한 스웨덴의 다양한 연인 관계
대학생 때 룬드 대학교로 교환학생 왔을 때
혈기 넘치는 학생들 사이에서 스웨덴 사람들은 잠자리부터 먼저 하고 사귄다라는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스웨덴 사람들 아니고도 혈기 넘치는 다른 국가 사람들도 꽤 많이들 그러는 것 같지만..)
헉, 데이트 먼저 하고 좋아한다고 서로 먼저 말해야 되는 거 아냐??라고 놀라면서 어머 어머 했었던 게 기억난다.

직장인으로 돌아와서 만난 사람들이랑은 대학생 때처럼 연인 관계에 대해서 사사로운 얘기까지 하지 않지만 종종 그들의 연인 문화가 신기할 때가 있다.
1. 아이를 낳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속도위반을 알아차리면 출산 전에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 동료 중에서 본인들의 자녀들을 결혼식 화동으로 세워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두 세명 봤다. 젊은 스웨덴 사람들도 여전히 그러는 거 경향이 있는 거 같다.
한 이십 대 중반 스웨덴 동료가 나한테 장담하는 식으로
"결혼은 네가 먼저 하겠지만 분명 아이는 내가 먼저 나을 거 같아~ 난 애기 둘 낳아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결혼할 거야"
"음~ 멋진 그림이 그려지긴 한다! 근데 굳이 왜?"
"그러면 더 완벽한 가족 조합의 세리머니가 될 거 같으니까?! 많이들 그래~"
맞다. 많이들 그러는 거 알고는 있는데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두 사람 사랑의 결실? 인 아이들이랑 사랑을 공표하는 세리머니 하는 이유.. 이해는 간다.
스웨덴어로 결혼했음을 표현하는 단어는 gift이다!
2. 동거인 sambo!
처음으로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동거인 제도에 대해서 알게 된 예로는 프랑스의 동거제도 팍스(PACS)였다.
팍스는 동거 형태를 지칭하는 단어이지만 스웨덴에서는 사랑해서 동거까지 하게 된 동거인을 부르는 단어가 따로 있다.
Sambo, 삼보라는 단어인데 사람뿐만 아니라 동거 제도를 뜻 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변에 보면 아주 오랫동안 결혼하지 않고 삼보와 동거하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심지어 동거인 사이에서 아이가 두 세명이나 있는데도 그냥 동거인 형태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간혹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 중 부모님이 혼인 사이가 아니라 동거인 사이인 학생들도 있어서 처음에는 놀랐다.
에피소드 1.
스웨덴 선생님 한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놀랐었다.
만으로 19살 된 딸이 남자친구랑 동거를 시작해서 자랑스럽고 두 사람을 응원한다는 포스팅이었고 사진에는 딸과 남자친구의 성이 적힌 아파트 우편함이 보였다.
요즘 우리도 동거에 대해 점점 이해도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주 어린 딸의 동거를 지지해 주고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
엄청 쿨하다!
에피소드 2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나랑 나이 차이가 세 살 정도 나시는데 고등학교 때 만난 연인이랑 삼보로 근 10년 이상 살고 있다고 한다. 금발에 매우 늘씬한 미인인 삼십 대의 젊은 리더, 정말 다 가진 것 같은 분인데 삼보분은 왜 결혼을 안 할까? 하고 할머니 같은 오지랖을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학교 행사 때 서로 연인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결혼 얘기가 나왔었는데 나는 결혼 준비가 너무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식을 할 것 같다고 했었다. 교장 선생님도 결혼식 준비가 너무 귀찮고 어쩌다 보니 그냥 삼보로 살고 있다가 재작년에 계획 임신해서 아주 귀여운 아기까지 출산하셨다고 한다. 아직 뚜렷한 결혼 계획은 없다고...
그러다가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옆에 있던 우리보다 나이가 꽤 많으신 스웨덴 남자 선생님에게
"(이름)~ 혹시 결혼했어요?"라고 캐주얼하게 물어보는 것!
그 남자분도 캐주얼하게 처음에 삼보로 살다가 결혼한 지 꽤 되었다고 대답했다.
우리 다 그 남자 선생님의 배우자가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꽤 많은 분한테 결혼했냐고 그냥 물어볼 수 있는 게 왠지 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보와 기혼자 비율이 맞먹어서 파트너가 있는 거 알면 그냥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거 같다.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자녀까지 낳으면서 왜 동거인으로만 사는 걸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약간의 검색 결과 삼보로 지내면 개인의 재산권을 지킬 수 있고 헤어지기도 편한 것 같다.
결혼하게 되면 공동 재산권이 생기고 헤어지거나 사별 후 배우자에게 상속이 된다.
하지만 동거인으로 살면 거주권만 보장되고 동거 이전과 이후에 개인 투자로 취득한 재산은 다 독립적으로 관리되고 사후에 유언을 남기지 않은 이상 배우자에게 상속되지 않는다.
헤어질 때도 한 사람이 같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게 되면 관계가 정리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사랑해서 같이 살고 사랑이 끝나서 집을 나오면 관계 정리 끝.
3. Särbo 세르보
길거리에서 우연히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 스웨덴 선생님 한 명을 만났는데 본인의 särbo와 스키 타고 온 얘기를 해줬다.
마친 머릿속으로 'särbo가 이름인가?' 하고 있었는데 넌 아마 모를 수 도 있으니 설명해 줄게 하고
Särbo는 연인이지만 다른 집에 사는 사람들이고 본인과 särbo는 이전 결혼에서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 särbo로 지내기로 했다고 친절하게 많은 정보를 얘기해 주셨다!
그냥 연인, 남자친구, 여자친구라고 하면 되지 않나? 또 särbo라는 말이 있는 게 신기해서 스웨덴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장거리 연애 하는 사람들도 쓰지만 보통 나이 많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이고 보통 연애 시작 전 이미 살고 있는 집이 있어서 정리하기 귀찮거나 사정상 같이 살 수 없어 연인으로만 지낼 때 särbo라고 한단다.
"근데 연인 관계를 표현할 때 꼭 동거 유무를 표현해야 하는 거야..?
그냥 여자 친구, 남자 친구 혹은 연인이라고 하면 안 돼?"

스웨덴 친구 왈 : "나이 든 사람들이 여자친구(girlfriend), 남자친구(boyfriend)하면 girl, boy가 너무 어린 사람들이 쓰는 단어니까 남세스러워서 대신 쓰는 단어야~"
그렇구나...! 관계 정리 표현하는 단어들이 나이와 동거 관계 여부도 반영하면서 꽤 섬세한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연애를 자유롭게 하는 스웨덴의 중, 노년층 사람들이 멋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쿨하게 삼보로 지내는 사람들은 왜 결혼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은 찾지 못했고
그저 사람마다 사정과 선호도가 다르다가 답인 것 같다.